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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시게 모토노부에 대해서

작성일 21-06-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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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92

프로야구 데뷔 1년차부터 1군 경기에 출전한 그는 이날 시모노세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사이토 마사키(사이토 마사키)의 만루홈런으로 중졸 신인 포수로 선발 출전했다. 그는 평범한 경기에서 오랜만에 첫 타석에 들어서며 희망을 충족시켰지만 80경기에 출전해 정상타율 0.75에 3개의 만루타, 10타점을 기록했다.

스도 유타카는 1990년 감독으로 부임할 당시 세이부 라이온즈에 뽑힌 고사쿠 아키모토와 함께 포수 1호 이치카와 가즈마사를 3호 포수로 내쫓았다. 그럼에도 1992년 팀의 끔찍한 성적에 책임을 지고 투항한 스도는 에지리 아키라가 수석 트레이너로 올라오면서 잠시 출전하지 못했다.

1993–97

요코하마 다이요 그는 웨일스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로 이름을 바꾼 뒤 곤도 아키히토, 오야 아키히코를 배터리 멘토로 내세우며 1번을 8번으로 바꿨다. 1996년과 1997년, 오야 아키히코가 감독으로 승진했을 때, 모리타 고키는 2년 연속으로 첫 경기를 시작했다.

1998–2001

1998년, 그는 공격과 수호의 중심 이슈로 일본시리즈에서 그의 팀의 승리에 놀라운 기여를 하며 골든 글러브 상을 수상했고, 경감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와 함께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시즌 최다 홈런인 20홈런을 기록했고, 1년 중 가장 부진한 시즌 FA 자격을 얻었다. 당초 메이저리그로 이적할 계획이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주니치로 이적했다.그 결과 주니치의 주전 포수 나카무라 다케시가 요코하마로 이적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주전 포수가 바뀌었다.

주니치 시대

2003–2005

2003년 시즌을 마무리할 무렵 오치아이 히로미쓰가 감독을 맡았고 모리 마사히코가 입고 있던 27번, 다부치 고이치가 입고 있던 22번이라는 가설 때문에 기본 포수의 프로 번호가 27번으로 바뀌었다. 2004년 일본시리즈 3차전에서는 주전 포수로 맹타를 휘두르며 클래스 우승을 도왔다.

2006년

그는 그해 일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에 선발돼 포수 베일을 쓰고 미국전에 선발 출전했다. 그는 이후 7월 26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포수로 출전했다. 노멀 타구, 안타, 득점, 도루 등은 8년 만에 골든글러브상을 받은 선수들 중 최하위였다.

2007

8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도요카프와의 역대 47번째 구기 최고 기록인 300페어를 기록한 데 이어 10일에는 포수 연속 자유투수가 1708개에 그쳤다. 타격 노멀, 득점, 안타, 현저한 증가, 공정한 안타, 그리고 만루에서는 협회 최소 타율인 타구 노멀이 전년도에 이어 골든글러브상을 받았다. 그의 파트너인 가와카미 겐신은 2년 연속 이 상을 수상함으로써 센트럴 리그에서 비슷한 그룹의 배터리로 이 상을 수상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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